반복되는 분열과 결합

19세기 중엽의 사진가처럼 효율성이 떨어지는 대형 카메라를 메고 거리에 나서서 도시의 건축물이나 도로들을 찍는다. 8×10 필름 홀더 안에는 16mm 영화용 필름이 가로나 세로로 빼곡하게 붙여져 있다. 완전히 광선이 차단된 깜깜한 암실에서 손으로 더듬어가며 홀더에 필름을 붙이는 작업만도 보통 서너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현상이 끝난 필름은 다시 한 코마씩 잘려져서 하나의 화면에 재배치된다. 결과를 예측하고 플랜을 짜서 촬영을 하지만, 최종적으로 작품이 완성되기까지는 결과를 예측할 수도 없다. 때로는 기술적인 실패가 개입되기도 하지만 그는 그 기술적인 결함까지를 작품 속으로 수용한다. 암실에서 미현상의 필름을 붙이는 일에서부터 마지막 완성에 이르기까지 박승훈의 작품 속에는 그렇게 우연성과 개연성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디지털이라면 제작의 어느 단계에서나 손쉽게 컨트롤 할 수 있겠지만, 그는 작품의 제작 행위에 자신을 보다 직접적으로 개입시키기 위해서 그는 모든 프로세스를 아날로그적인 수작업으로 수행한다. 무거운 장비를 지고 이동하는 거리와 지루하지만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촬영과 암실작업…. 그에게 있어서 사진은 정신의 연장일 뿐 아니라 신체적인 행위를 밖으로 확장시키기 위한 도구이자 행위다.

도시와 건축물과 거리는 불완전한 형태를 담은 이미지의 파편들로 분리되고, 그 조각들을 마치 모자이크를 만들 때의 작은 테세라처럼 하나씩 다시 붙여진다. 그 이미지의 작은 조각들은 때로는 리드미컬하게, 때로는 서로 불협화음을 빚으면서 결국은 미묘한 시각적 심리적인 울림을 가진 색과 형태와 면으로 된 하나의 파사드를 출현시킨다. 가라앉은 중성적인 컬러, 다양한 형태의 중첩과 분리, 미로와도 같은 복잡한 거리, 그러면서 분절된 요소들은 여전히 저마다의 존재들을 갖고 있다.

서로 성질이 재료를 섞어서 공간과 시간과 기억을 집적시키는 방법 그 자체만을 보면, 르네상스 이래의 사실적인 전통에서 회화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이 구사한 콜라주나 몽타주 기법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박승훈의 작품은 개별적인 이름을 가진 특정한 도시와 거리, 건물들의 부분의 단순한 조합이나 기억의 재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현대라고 하는 시대의 작동 원리에 관한 다양한 담론들을 끌어내는 것을 작품의 기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생명의 연속성은 반복적인 분열과 증식에 의해서 가능하다. 그에게 있어서 사진은 대상이 원래 갖고 있는 형태의 연속성을 단절시키고, 그 분절된 요소들을 수평과 수직방향으로 미묘하게 어긋나게 다시 조합시킴으로써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도시와 거리와 건축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다. 단편적인 이미지의 집합과 충돌과 공명, 감각적 성질의 변화는 새로운 의미와 질서를 생성시킨다. 제반 현상들의 생성 메커니즘은 아마 그런 미로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은 정지와 불변성, 존재의 근원적인 원리에 관한 환기를 촉발시킨다. 우리는 그가 제시하는 불안정한 세계를 바라보는 순간, 아무런 의심 없이 그것이 17세기의 사원이나 이국의 대도시의 건물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러나 박승훈은 그런 자동적인 인식의 과정에 제동을 건다. 우리가 세계를 지각할 때는 부분이나 요소들의 집합이 아니라 전체적인 형태 그 자체로 파악하게 되고, 부분적이고 개별적인 감각 요소들은 전체적인 틀 안에서 즉각적으로 규정된다. 박승훈의 작품은 전체성을 가진 통일된 구조가 개개의 부분으로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을 통해서 세계에 대한 우리의 안정된 인식 구조를 흔들어놓는다. 그리고 그 인식 구조를 만들어내는 원리에 관해서 생각하도록 만든다.

김승곤 (평론가, 순천대 교수)